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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눈물로 성경을 쓴다 운영자 2020-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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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눈물로 성경을 쓴다

김용남 지음

천국을만드는사람들 / 20096/ 196

 

저자 김용남

1950년 전남 순천의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타고난 씨름꾼이었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강인한 체력 덕분에 중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남산공전 역도 특기생으로 입학, 전국체전에서 3년 연속 금메달을 따며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지만 조직 폭력계에 발을 들여놓고, 나중에는 정치인들의 꼬임에 속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을 주도하여 26개월 교도소 수감생활을 하였다. 출소 후 극한의 가난 속에서 조직폭력계로 복귀하기를 망설이던 중, 하나님을 영접하여 철저히 회개하고 성경을 필사하는 과정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였다. 지금은 광고 및 간판 사업을 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교회, 사회단체, 교도소 등에서 간증을 하고, 천국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전도그룹을 결성하여 전도 사업에 매진하는 삶을 살고 있다.

 

Short Summary

저자 김용남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싸움을 잘 하는 아이로 자랐다. 씨름꾼인 아버지를 닮아 체력이 좋았던 그는 중학교 중퇴 후 남산공전 특기생으로 역도를 하여 전국체전에서 3년 연속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그러나 조직폭력계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용팔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다. 그 후로 정치인들의 꼬임에 속아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으로 26개월의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그 후 가난 속에서 조직폭력계로 돌아갈 것을 망설이던 중 자신을 전도한 사람에게 1000만원을 빌리기 위해 출석한 교회에서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성경을 읽다가 주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 저자는 성경을 필사하기 시작해 6년여 만에 벌써 네 번째 필사 중이다. 이 책에는 그리스도를 모르고 살아온 저자의 옛날 모습과, 신앙생활 이후 변한 그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진정한 삶의 변화를 보여주는 그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차례

 

Part 1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끈질기게 나를 부르셨던 하나님 / 성경을 쓰면서 나타난 기적

입에서 뱉어진 말의 위력 /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이상한 경험

너 사랑했느냐?” / 통일민주당 창당방해 사건

하나님의 방해 / 유혹에서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

하나님께 속속 돌아오는 탕자들 / 작은 사랑의 실천

그저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우리에겐 복수할 권한이 없다

 

Part 2 사랑하는 법 배우기

아내를 사랑합니다 / 하나님 백으로 건방져진 아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들 / 주님 안에서의 형통

나에게 여전히 부족한 것 / 일주일 동안 쓴 돈의 용도

일주일 동안의 착한 행실 / 나에게 남은 누추함

십자가의 고난 / 예수님의 희생

발 씻겨주기 / 그래도 자주 실족합니다

교회에 대한 나의 약속

용팔이도 예배를 경건하게 드립니다

강남 땅을 향한 사랑의 눈물

하나님이 나의 삶에 베푸신 은혜

 

Part 3 지켜주심

교통사고에서 지켜주심

천사와의 만남

교회를 통한 지켜주심

 

Part 4 가족이 전하는 나의 변화

아내가 바라본 남편의 변화

아들이 바라본 아버지

딸이 바라본 아버지

원고정리자가 바라본 김용남 집사의 눈물

 

 

Part 1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끈질기게 나를 부르셨던 하나님

1950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주먹질로는 상대가 없다는 악명을 들을 정도로 나는 싸움을 잘했고, 또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었습니다. 소위 조직 폭력배니 깡패니 하는 사람치고 싸워 진 적이 있다고 시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만 난 정말로 일대일로 싸워서 진 적이 없습니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회 정화 차원에서 교화가 필요한 사람들을 삼청교육대로 끌어갔습니다. 나 역시 그곳에 끌려가 정말 지옥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영하 20도인 혹한 속에서 얼음물 속에 들어가는 것은 보통이고 곡괭이 자루로 맞아 사망하는 등,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이미 그곳에서도 악질 중의 악질로 알려져 툭하면 기절할 정도로 매를 맞았습니다. 나는 참으로 염치없게도 하나님, 나 좀 살려주세요하고 빌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뭔가를 얻어먹으러 교회에 여러 번 갔었는데 그때 사람들이 하나님께 소원을 빌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내 귀에 다시 하나님이란 이름이 들린 것은 1987년 정치인들의 꼬임에 빠져 부하 200여 명을 동원하여 통일민주당 창당방해공작을 수행하다가 2년 만에 검거되어 수감생활을 할 때였습니다. 정치인들은 나를 찾아와 그 일을 잘 처리해주면 나중에 국회의원도 시켜주고 가족들의 생활도 책임져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믿고 일을 저질렀는데 막상 수감되고 보니 찾아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26개월 만에 수감되었다가 출소한 후 만난 분이 바로 그 유명한 주먹 시라소니 형님이었습니다. 형님은 전설적인 주먹인 김두한 형님도 인정한 주먹 중의 주먹이었지만 이승만 정권시절 막강의 권력을 휘두르던 이기붕 부통령 그늘 밑에서 정치깡패 노릇을 하던 이정재 조직의 습격을 받아 크게 부상을 입은 후 종적을 감추었다가 목사님이 되어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은 나에게 절대 복수를 해서는 안된다. 복수는 인간의 권한이 아닌 하나님의 장중에 달렸다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뒤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돈을 내려고 하는데 누군가 이미 식사비를 대신 지불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옥경이, 칠갑산,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같은 히트곡을 작사·작곡하여 세상에 알려진 음악인 조운파 선생이었습니다. 그분의 사무실이 내 옆 사무실이었는데 항상 찬송가 소리가 들렸습니다. 지독하게 쪼들리던 나에게 나쁜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나는 선의를 베푼 선생님에게 다짜고짜 1,000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큰 돈은 없지만 100만원은 어떻게든 빌려줄테니 대신 교회에 가자고 제의했습니다. 나는 100만원을 얻기 위해 200210월 그분의 손에 이끌려 사랑의 교회 새생명 축제전도대회에 참여하여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믿기로 결신했습니다.

 

성경을 쓰면서 나타난 기적

말씀을 보며 하나님께 돈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교회에서 목이 터져라 돈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아는 집사님이 부르셔서는 먼저 죄부터 회개하시고 나서 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다 알아서 필요한 것을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회개를 위해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지은 죄들이 어찌나 많이 생각이 나는지 나중에는 목이 쉬어 꺽꺽하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교구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성경을 많이 읽으라고 하시며 한 번 읽고 오면 상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열심히 읽어 일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목사님에게 가서 말하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마지못해 CD 한 장을 내미셨습니다.

 

조폭 출신이라 무시하는가 보다라고 생각하고는 차라리 쓴 걸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날부터 실행에 옮겼습니다. 매일 최소한 4-5시간씩 썼습니다. 단 하루도 쉬지 않았습니다. 5분이라도 시간만 나면 사업장 구석에 마련한 기도방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몇 가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첫째, 맞춤법에 도사가 되었고 둘째, 독서를 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성경을 읽을 때보다 쓸 때 하나님의 말씀이 적어도 서너 배는 잘 이해되고 또 기억되었습니다. 넷째, 나도 모르게 중이염, 약한 시력, 그리고 겁 없는 무모함에서 나음을 받았습니다. 중이염은 어릴적 철로 교각에 누워 있다가 기차가 오면 가장 늦게 강물로 뛰어내리는 위험한 놀이를 하며 지냈는데 그 때 얻은 병으로 45년 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그리고 수천 번의 싸움을 하면서 겁이 없었는데 하나님을 믿은 후로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작은 사랑의 실천

조직생활을 하던 친구가 중풍으로 쓰러져 지방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건강했을 때에는 유흥가에서 사람들이 찾아왔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 이제 끝났다며 조롱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찾아갔습니다. 중풍으로 사지가 마비가 된 그 친구는 뜻밖에 나타난 나를 보고 의아해하는 눈치였습니다. 나는 지옥 같은 생활을 하다가 예수님을 영접한 과정을 간증했습니다. 그는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그 다음 주에도 내려갔습니다. “하나님이 자네를 구원하시려고 나를 보내신 것이라고 우겼습니다. 그 다음 주에도 내려갔습니다.

 

그렇게 한 달을 했더니 그 친구가 눈물을 보이며 알아듣기 힘든 음성으로 어렵게 말합니다. “나를 찾아주는 친구는 자네뿐이야. 정말 고마워. 자네가 믿는 예수님 나도 믿고 싶어.” 나는 그를 붙잡고 울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교구 목사님을 모시고 와서 기도 받게 하고 싶은데 바쁘신 목사님을 지방까지 모실 수 없어 성경을 써봤다는 특권으로 친구의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그 친구의 발을 씻겨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 다음 주에도 내려갔습니다. 그 친구를 부축하고 걸으면서 찬양했습니다.

 

그 다음 주에도 내려갔습니다. 그렇게 세 달이 흘렀습니다. 그 후 친구는 혼자서 성경을 보고 기도하더니 지금은 혼자 걸을 수도 있고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도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Part 2 사랑하는 법 배우기

 

아내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어보자는 각오는 나를 자연스럽게 교회에서 실시하는 교육프로그램과 행사들로 인도했습니다. 나는 먼저 가정을 꾸민 이래 단 하루도 아내와 아이들을 평안하게 해 주지 못한 것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장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기로 하고 온누리교회에서 초교파적으로 실시하는 아버지 학교프로그램에 등록하여 5주간 공부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아버지였는지, 얼마나 못된 남편이었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나는 우선 아내와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고선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 아내를 사랑하면 온 가정이 행복해진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내에 대한 나의 처신을 회고해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남인양 거의 방치하다시피 살았습니다. 내가 돈을 갖다 주지 않아도 아내가 어련히 알아서 먹고 애들 교육시키겠거니 했습니다. 나의 아내는 다른 아내들보다 남편 때문에 가슴앓이로 훨씬 고생을 많이 한 여자입니다. 나는 아내의 눈물을 씻겨주기 위해 아버지 학교에서 배운 바를 최선을 다해 실천해보기로 했습니다. 내게서 교회 다니자는 말을 듣고 쌍수를 들어 환영했던 아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모저모로 우리 가정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리라는 믿음이 왔습니다. 우리 부부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더 가까워져서 하늘나라 갈 때까지 치열하게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 백으로 건방져진 아내

우리 가족이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내가 아내를 향한 사랑을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제일 눈에 띄게 변한 것은 아내가 도무지 나를 겁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눈을 조금만 치켜 떠도 구석진 곳으로 피하곤 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나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명령을 합니다.

 

부부동반 제자훈련에 참가하여 아내의 발 씻겨주기프로그램을 이행하면서 나는 작고 예쁜 아내의 발을 씻겨주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내의 발만 씻게 하지 마시고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이 여인이 저로 인해 입은 상처와 고통마저 씻어주게 하옵소서.” 아내의 발에는 나로 인해 겪은 고초가 짙게 배여 있었습니다. 그 작은 발이 나의 가슴을 파헤쳐집니다. 나는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두 번 다시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고. 남들은 결혼하여 시간이 흐르면 부부간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하는데 우리 집은 반대입니다. 하나님을 백으로 둔 가정은 우리처럼 다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들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지 7년쯤 되지만 돈을 달라고 해서 응답 받은 경우는 없는 것 같습니다. 매번 하나님은 응답이 아닌 것 같은 은밀한 방법으로 위기를 넘겨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돈보다 훨씬 중요한 것들을 이미 나에게 주셨고, 돈이 가장 하찮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만 같이 하신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돈 버는 방법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에 나 역시 노력해서 그 방법을 배우고, 연마하고, 그리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주님 안에서의 형통

믿는다고 해서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고 재물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더군요. 때로는 간증을 하러 지방에 가야하는데 교통비조차 없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래, 네가 나를 믿으니 만사형통하게 해주겠다혹은 간증하러 간다는데 그냥 보낼 수 있나? 옜다, 돈 여기!’ 하시지 않으시더군요. 지방에 갈 교통비가 없는 경우엔 큰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몇 군데 전화하는 것만으로 쉽게 해결되지요.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 보시고 계시더군요. 아무리 어렵더라도 하나님을 빼놓고 세상적으로만 타협하는 죄는 짓지 않겠습니다. 나에게 이런 마음을 주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형통은 환경이 좋아지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성실히 행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해주시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면 감옥에 있을지라도 형통한 것이지요.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세계 최고의 부호라 할지라도 이미 망한 것입니다.

 

나에게 여전히 부족한 것

하나님을 믿으면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나는 언제나 이 9가지 열매들을 다 열리게 할 수 있을까요. 나는 특히 절제의 열매가 부족합니다. 너무나 힘들면 예수님 그만 믿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까? 돈 번 후에 다시 예수님 믿으면 되지 뭘하는 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듯합니다.

 

성경 쓰는 것에 조금만 게으름 부리면 마귀가 나를 유혹합니다. ‘그냥 눈으로만 보라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속으로 읽기만 하는데 넌 왜 유난을 떨고 그래?’ 나는 바로 회개하고 기도합니다. 다른 교우들은 배운 것이 많고 믿은 지 오래 되어 그냥 눈으로 보기만 해도 충분한지 모르지만 난 써야 압니다. 나는 세상의 유혹과 시험이 몰려와도 절제로써 이겨낼 힘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지금까지는 잘 이겨왔습니다. 성경을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남 땅을 향한 사랑의 눈물

제자훈련을 받기 시작한 2006년부터 강남 땅밟기 사역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수요예배가 끝나면 4050여 명 남짓한 교우들이 먼저 기도를 드린 후, 교회를 출발하여 교보생명빌딩, 강남역을 돌아 교회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오른손을 들고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걷습니다.

 

처음에는 뭔지도 모르면서 교우들을 따라 다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강남 일대가 심하게 죄악으로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술 취해 비틀거리는 젊은이들, 사람들을 유혹하는 현란한 네온사인, 무질서하게 주차된 자동차들 그리고 길에 낙엽처럼 깔린 음란광고 전단지. 야심한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젊은 남녀들이 방황하는 것이었습니다. 버럭 겁이 났습니다. “지금 주님이 오시면 어쩌려고 저러고들 있을까? 성결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가 주님의 재림을 맞아야 할 텐데.” 그들을 보시면서 가슴 아파하실 주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들이 불쌍해서라기보다는 잘못된 길로 나가는 자식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아버지의 고통이 느껴져 나 역시 때로는 눈물을 흘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땅밟기 사역을 한 지 수년이 되지만 강남은 여전히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하늘에서 유황불이 떨어지기 전에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해야 할 텐데 우리들의 능력은 너무나 보잘것없습니다.

 

Part 3 지켜주심

 

교통사고에서 지켜주심

어느 집사님의 자동차를 타고 지방 교회에서 간증을 하고 서울로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사방이 캄캄하여 교통 표지판이 보이지 않자 집사님이 그간의 경험에 의지해 서울방향으로 생각한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집사님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순간적으로 , 이제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한참 후 눈을 떠보니 집사님도 나도 한군데도 다친데가 없이 멀쩡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는 완전히 망가져 폐차할 지경이었습니다. 상대편 자동차도 다 망가졌는데 역시 그 안의 두 사람은 멀쩡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도로는 우리 쪽에서 진입할 수 없는 일방통행로였습니다. 하지만 상대편 사람들은 우리의 잘못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화를 내지 않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음에 오히려 기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외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들에서도 우리를 지켜주셨고, 앞으로도 지켜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천사와의 만남

어느 교회에서 간증집회를 끝내고 그 교회 P집사님과 함께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다가 누군가 토해놓은 오물에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보는데 정말 난감하더군요. 가뜩이나 험악한 인상에 술 냄새나는 오물을 양복에 뒤집어썼으니 그 꼴로는 전동차에 탈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집사님이 저런, 저런 어쩌나!” 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데 왠 젊은 여성이 다가와 백에서 손수건과 휴지를 꺼내더니 망설이지 않고 내 양복에서 오물을 닦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저에게 휴지를 주십시오.” 그분은 자신의 손에 오물이 달라붙는 것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가족에게 하듯 깨끗이 닦아주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는 말과 함께 그 여성에게 얼굴을 돌리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를 초청한 집사님도 나의 오물을 닦아주지 못했는데 한 번도 보지 못한, 그것도 잘 차려입은 젊은 여성이 뭣 때문에 나의 옷에 뭍은 오물을 닦아준단 말입니까?

 

집사님도 방금 전까지 바로 눈앞에 있던 그 여성이 보이지 않자 이상스럽다는 듯 고개를 꼬며 말했습니다. “김 집사님, 그 여자분 천사였는가 봅니다.” “그런가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교회를 통한 지켜주심

신앙생활을 한 지 7년이 되어갑니다. 교회 식구들이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이 기도해주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오정현 목사님은 버려진 인생을 사랑으로 안아주셨습니다. 이분을 통해 죽도록 교회에 충성하는 것이 믿는 자들의 도리라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교회 예배 출석의 기쁨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옥한흠 원로 목사님의 설교는 인터넷을 통해 수십 번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내가 속으로나마 믿음의 아버지로 삼은 분입니다. 이분의 말씀을 들으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아주 편해지는 기분입니다. 나의 사명은 교회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고 또 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차게 하는 것입니다.

 

Part 4 가족이 전하는 나의 변화

 

아내가 바라본 남편의 변화

저의 남편은 주먹 세계에 몸을 담고 있었지만 순박하고 어리석고 초등학교 1-2학년과 다를바 없는 그야말로 순진하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인정이 많아서 누가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 주머니를 다 털어 내놓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사실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도 그만한 인력을 동원할 수 있을 만큼 인심을 샀기 때문이었지요. 그런 성품을 이용하려는 사기꾼들이 얼마나 많이 들끓었던지요.

 

남편이 26개월 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 중에도 나는 자주 면회를 갈 수 없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감옥에 있는데 편안하게 있을 수 없다면서 맛있는 반찬은 입에 대지 않으시고, 겨울에도 냉방에서 지내셨습니다. 슬픔과 눈물로 얼룩진 삶이었지요.

 

남편이 출소해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여러 번의 사업 실패로 집안 살림은 날로 줄어 지하 셋방으로 이사 가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닮아 굉장히 활동적이라 그런지 주인집 아들이 서울법대를 목표로 공부하는 데 방해된다면서 밖에 나가서 놀라고 해서 어린 아들은 낮에는 거의 대부분 뜨거운 햇볕이 내려쪼이는데도 맨손으로 땅을 파서 벌레를 잡으며 친구들과 놀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들이 자다가 고열로 신음하는 것이 심상치 않아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뇌수막염이라고 하더군요. 아들은 척추에서 골수 채취를 할 때면 자지러졌습니다. 그런 힘든 과정을 여러 번 겪어야 했습니다. 남편이 보기 싫을 정도로 미웠습니다. 돈 있으면 자기보다 못한 동생들에게 주고 돈 한 푼 빌려올 데 없는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으면 남편은 신경질을 부리며 가재도구들을 부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 형편없는 지하 셋방을 나와 빚을 일부 갚고 그보다 더 못한 다른 지하 셋방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곳에서 5년을 살았는데 아이들은 천식, 비염, 중이염을 달고 살았고, 나 역시 아이들 밥조차 해주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남편은 사기당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당한 것이 분해 술만 마셔댔습니다. 참으로 힘겨운 삶의 연속이었지요.

 

남편이 다시 폭력세계로 가는 게 아닌가 하며 지냈는데 어느 날부터 교회에 다닌다면서 온 가족이 다 예수님을 믿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어렵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바라본 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불신, 무능력, , 담배, 반감, 무책임, 죄인 같은 낱말들로 똘똘 뭉친 분이었습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버지에 대한 애정도 없었고, 또 아버지와 같이한 추억도 없었습니다. 그저 계셔도 없으신 것 같은 분이었지요. 게다가 가족들에게도 많은 고통을 주셨어요. 그런 아버지로 인해 아픔만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아버지의 계속되는 사업실패는 지독한 궁핍으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가족들의 마음의 병과 신체적인 질병은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변해갔습니다.

 

우리 집의 마지막이 가깝다는 느낌이 들 무렵, 하나님이 아버지를 찾아 주셨습니다. 어둠의 구름이 서서히 걷히는 것 같더니 우리 집에 평화의 빛이 깃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수심을 걷어내고 얼굴에 미소를 담게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누구이시기에 아버지를 저렇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나 또한 그런 하나님을 믿기로 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딸이 바라본 아버지

우리 가족에게는 회사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온 가족과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나누는 자상한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대신 어쩌다 집으로 돌아오면 줄담배를 피우면서 술을 마시고, 사소한 일에도 버럭 화를 내는 무서운 아버지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오시면 무서워서 숨소리조차 죽이며 구석에 처박혀 있었습니다. 엄마의 눈에서는 눈물이 끊이지 않았고,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우리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점차 불쌍하고 안쓰러웠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아버지를 손가락질해도 나라도 잘 해드려야 하는데 자식마저 아버지를 비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거두고 아버지를 마음속으로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바로 새벽기도에 참석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두꺼운 성경책을 몇 번이나 손으로 쓰셨습니다. 아버지의 변한 모습이 놀랍습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그런 아버지를 본받아 나 역시 하나님을 섬기며 살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학교 선생님이 되면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겠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사람들이 이 세상에 가득할 수 있게 말입니다. 우리 가족을 살려주신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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