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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6일 수요가정나눔-예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박성수담임목사 202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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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사기13:1절 개역개정

1.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사사기13:5절 개역개정

5.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제공: 대한성서공회

수요(가정)예배 순서지

 

샬롬 광주두암중앙교회입니다.

오늘 수요 예배는 각 가정에서 주일날 주어진말씀을 질문에 따라 가족들과 함께 나누시므로 풍성한 은혜를 받는 복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1,사도신경

2,찬      송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3,성경말씀 사사기 131. 5

4,설      교 예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5,찬      송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6.주기도문

 

 설교문

예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13:1, 5

   

요즘 과학은 날로 발전합니다. 날마다 진보하는 자동차의 발전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차 안에 사람이 위급할 경우에는 차가 스스로 응급 모드로 작동 됩니다. 다시 말해서 졸거나 다른 것에 집중하다가 앞 차들이 서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브레이크를 받지 않으면 차가 스스로 위급한 상황을 판단해서 사람의 다리 힘보다 더 세고 빠르게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아주 강하게 잡아줍니다.

 

이런 기술들은 점점 자동차에 보편하게 퍼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위험 상황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실제로 위험한 상황이 되면 스스로 구원을 요청하는 판단력이 흐려지거나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사람은 위기의 상황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감지한다고 할지라도 대처할 능력이 약한 것이 바로 인간의 실제 모습입니다.

 

우리는 위기에 매우 둔감한 존재입니다. 심지어 개미보다도 쥐보다 앞으로 닥칠 자연 재해에 대해서 가장 둔감한 존재가 가장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바로 인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엄청나게 받은 민족입니다. 은혜와 축복은 하나님께 받고 감사와 찬양은 우상과 자연에게 드리는 자가 바로 어리석고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은 블레셋 민족에게 이스라엘을 넘깁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죄악대로 40년동안 블레셋 민족에게 종노릇하며 비참하게 살도록 그들을 더 이상 보호하지 않고 내버려 두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으면 이스라엘 민족은 블레셋 민족에게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주 이상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압제를 당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구원자로 삼손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신을 차리고 돌아와서 회개를 한 것도 아닌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눈물로 회개하지 않았는데도 상관없이 삼손이라는 구원자를 이 땅에 내려 보내 주십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하실까요? 왜 하나님은 구원의 요청도 하지 않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사사 곧 구원자를 예비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는 인간의 모든 어려운 형편을 미리 아시고 그때 그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해결해주십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죽지 않고 영생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아담은 상처가 나면 지금과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세포들이 치료되고 회복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싶은 타락의 욕망을 더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 자신을 구원하는 자가 되고 싶었고 자신을 스스로 지키는 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타락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하나님은 인간을 어떤 위험으로부터 구원해주는 자리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이제 인간은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을 구원하고 싶어서 하나님을 쫓아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구원할 지혜와 힘과 능력이 타락한 후에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타락한 이후에는 가장 똑똑한 피조물에서 가장 어리석은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남은 인생을 우울하고 움츠리며 살게 됩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구원하기는커녕 누가 쫓아오지 않는데도 쫓겨다니며 움츠리고 사는 인생을 사는 자가 바로 절망적인 인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계명들을 우습게 알기 때문에 블레셋이라는 민족에게 종노릇을 하게 되지만 하나님은 진노를 계속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징벌을 즐거워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징벌과 동시에 구원을 마련하시는 소망의 분이시고 인간이 가장 더럽고 추악할 때에 인간에게 구원자를 예비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가장 더럽고 추악하고 죄악으로 가득찼을 때에 예수님은 이 땅에 내려오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왔을 때에 모든 인간들이 회개하며 애통해하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있지 않았습니다. 모든 인간들이 다 더러운 죄인일 때에 예수님은 이 땅에 구원자로 내려오셨습니다.

 

민족의 위기의 순간에 구원자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위기가 인물을 만든다는 말까지 떠돌아다닙니다. 구원자라는 자격은 인간 스스로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삼손이 구원자가 되는 사사로서의 역할을 갖고 태어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삼손을 구원자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자가 되시는 것은 구원자의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악으로부터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만이구원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십니다. 예수님이 구원의 시작요 구원의 완성이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삼손처럼 하나님에 의해서 준비된 유일한 구원자이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구원하러 내려오실 때에 그의 외모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귀티가 나야하는데 예수님은 귀한 티가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얼굴과 풍채는 전혀 구원자로서 외모가 없었습니다(53:3). 예수님은 멸시를 당합니다. 예수님은 귀히 여김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자 예수님의 형편없는 외모였습니다. 구원자로서 구원자답게 생기지 못한 것은 비난받고 욕을 받을만한 것은 아니지만 모든 인간들을 외모를 보고 욕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왔을 때에 구원자로서 예수님은 누구를 찾아다니셨습니까? 예수님은 항상 의롭게 산다는 의인을 찾지 않고 항상 애통하고 더럽게 사는 절망적인 죄인들을 찾아다니면서 그 죄인들을 구원해주기 위해서 애쓰셨습니다. 죄인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구원을 주기 위해서 죄인을 찾아가서 구원해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역사입니다.

 

구원이란 인간이 소리를 쳐서 힘써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이란 인간이 준비하고 인간이 먼저 시작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구원의 시작은 인간이 의로움도 아니고 구원의 시작은 인간이 깨끗함이 아닙니다. 구원의 시작은 예수님이 인간들을 구원하기, 원하는 시점이 바로 구원의 시작이 됩니다. 인간이 잘나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더럽고 추악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구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완악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커다란 징계를 받고 있을 때에 삼손은 이스라엘 한 구석에서 조용히 알아주는 사람이 없이 태어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죄악으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것을 보시고, 삼손을 준비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위해서 삼손으로 이스라엘을 지키고 보호해주고 블레셋의 약탈과 폭압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구원자로 세우십니다.

 

구원자 삼손의 힘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며 어떤 강력한 민족도 대적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커다란 용사입니다.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소망은 삼손으로부터 이제 시작되었습니다. 삼손의 출현은 막강한 블레셋으로부터 연약한 이스라엘을 지키고 보호하고 구원하는 사사의 사명을 갖게 됩니다.

 

     많은 현대인들은 위기의 순간에 자신은 민첩하게 행동해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위기에서 스스로 탈출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모든 인간은 누군가 밖에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죄악으로 죽어가지만 자신이 죄악으로 죽어서 지옥에 간다는 것도 확실히 잘 모르면서 살다가 지옥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이 가장 더럽고 가장 추악할 때에 이 땅에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이 도와달라고 하기 전에 이미 2천년전에 이 땅에 스스로 와서 인간들을 구원으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구원의 손을 뿌리치지 않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죄가 많다고 할지라도 그 부모도 자식을 버렸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은 그런 죄인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면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는 은혜를 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구원을 외면하거나 예수님의 구원을 거절하게 되면 영원한 지옥으로 들어가는 화를 얻게 됩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찾아다니지 말고 찾아오신 예수님의 손을 붙잡으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게 됩니다.

 

성도란 가장 죄많은 자이고 하나님의 진노를가장 많이 받은 자입니다. 불신자들은 이세상에서 아무리 편안하게 살아도 죽으면 지옥의 심판이 기다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종종 불신자들을 이 세상에서 심판하지 않고 죽고 난 다음에 지옥에서 심판을 하십니다.

 

그러나 성도란 죽으면 더 이상 어떤 심판도 없습니다. 성도란 죽으면 영원한 축복의 상급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천국으로 구원하기 위해서 때때로 잘못가는 성도들을 징벌도 하시고 훈계도 하시고 엄히 꾸중도 하십니다.

 

하지만 성도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성도이고, 성도가 아무리 부족해도 예수님의 성도이고, 성도는 아무리 어리석어도 지혜로운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행동이 더럽고 추악할 때에, 우리의 생각이 더럽고 추악할 때에, 예수님은 우리를 그 더럽고 추악함에서 건져주시기 위해서 많은 것을 준비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있을 그 시간에, 우리가 죄의 형벌을 받고 있는 그 시간에,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사람은 사람이 악하고 더러울 때에 그를 구원해주고, 그를 용서해 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가장 부도덕하고 가장 추악한 자를 용서해주고, 오히려 기도해주고, 오히려 기다려주고, 오히려 품어주는 예수님의 구원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어떤 절망 속에서도 예수님의 소망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예수님의 구원의 마음을 갖도록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집에서도,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실수하고 죄를 짓는 자를 향하여 분노와 모욕과 복수의 마음을 갖고 사람을 대하면 결국 모든 자들은 서로간에 절망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죄인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면 어떤 죄인도 가족과 같이 친밀하고 사랑하는 대상으로 대할 수 있다.

 

구원의 시작이요 완성이신 예수님 안에서 천국을 누리시고 코로나를 밟고 생명의 풍성한 은혜의 삶을 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의시간) 

1,인간은 위기에 둔감한 존재입니다. 즉 위기상황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할뿐만 아니라 감지한다고 해도 대처할능력이 약한것이 인간의 실제 모습입니다. 떻게 생각하십니까?

 

 

2,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블레셋 민족에게 종노릇하며 비참하게 살아야만 합니까?

 

 

3,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과 인간이 어떠한 상황에 있을 때 구원자, 삼손과 예수님을 준비하십니까?

 

 

4,구원의 시작은 인간이 가장 깨끗하고 거룩할 때가 아닌 가장 더럽고 추악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5,여러분에게 성도란 개념과 설교를 통해서 깨닫게 된 성도라는 개념의 차이가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것인지 함께 논의해 봅시다.

 

 

6,불의하고 악한 사람에 대한 사람의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의 차이를 함께 논의해 봅시다.

 

 

7,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며,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속에서 예수님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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